인간의 시간이 지구의 시간을 왜곡하면서 생성되는 기형적인 땅의 풍경을 초현실적으로 표현한 시리즈​​​​​​​
풍경과 땅에 대하여
사진을 공부한 이래 풍경은 줄곧 내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으며 풍경에 대한 기록이 나에겐 사진을 하는 사명감 중의 하나로 작용했다. 그런 내게 대규모 신도시 건설현장의 풍광과 로버트 아담스의 사진은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풍경에 대한 시선을 다시 바라보게 해주었다. 우리 시대의 풍경은 있는 그대로의 것이 아니라 인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나는 인류가 어떤 식으로 풍경을 창조해내는지를 목격할 수 있었다.
내 작업의 많은 부분이 인천 영종도의 대규모 신도시 개발현장에서 촬영되었다. 신도시 개발현장의 풍경은 말 그대로 자연스레 놓여 있는 산과 들에서 돌을 캐내고 구덩이를 파고 콘크리트를 들이붓고 있었다. 땅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고여 있던 물을 하염없이 퍼올려 모두 다 말리고 엄청난 크기의 철근을 심어 뼈대를 세워 아파트를 건설한다. 영종과 더불어 인천 송도 역시 나의 주된 촬영 장소였는데, 송도 자체가 간척사업으로 조성된 땅을 기반으로 세워진 도시였기 때문에 아직도 여기저기서 그 흔적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송도에서 바라본 바다는 수억 년의 시간 동안 품에 안았던 뻘을 빼앗겼고, 제 살을 깎인 듯 마냥 주춤주춤 뒷걸음질쳐 있었다. 우주만큼이나 무수한 생명들이 호흡하던 뻘은 제 숨구멍을 모래와 진흙으로 틀어막힌 채 인간들을 위한 새로운 경작지가 되고 새로운 돈이 되어 있었다.
우리가 가는 곳 어디를 가도 놓여 있는 공사 중 표지와 땅속을 파고 들어가는 굴착기 소리는 이제 너무 익숙한 풍경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야말로 365일 24시간 공사 중이다. 나에게 풍경은 이렇게 각인된다. 먼지와 소음이 가득하고 뜨거운 숨을 토하며 헐떡이는 아스팔트가 새로운 땅이 되어버린 풍경이다. 눈을 뗄 수 없는 스펙터클로 가득 찬 안셀 아담스의 풍경은 울타리에 갇힌 픽셀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우리는 안셀 아담스의 풍경을 볼 수 없다. 그러한 풍경은 이미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만 하는 소비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내 눈에는 로버트 아담스가 바라봤던 인간에 의해 창조된 풍경이 이 시대의 진정한 풍경이라고 생각되며, 이번 작업은 그것을 기초로 시작되었다.
학창시절부터 지속적으로 각인되어 오던 인간에 의한 풍경은 나의 사진적 대상을 공사현장이나 버려진 땅에 초점을 맞추게 해주었다. 대규모 공사현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량한 느낌과 검은 아스팔트의 콘트라스트는 내 사진에 강력한 동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산허리가 잘려나간 거대한 채석장의 기괴함은 내게 우리가 밟고 서 있는 이 땅의 근원을 생각해 보게 해주었다.
땅,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땅의 역사는 대략 46억 년 정도이다. 원시의 지구는 뜨거운 마그마를 식히며 딱딱한 땅을 만들어내고 대기를 만들어 생명을 창조해 내었다.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며 거대한 생명의 순환을 만들어냈으며, 판게아의 땅덩어리를 쪼개고 쪼개어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 지구는 46억 년 전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변화하고 또 꿈틀대고 있다. 계속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진화의 시간 동안 땅은 계속 변했고, 그 땅 위에서 생명은 태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빙하기가 오면 땅 위의 생명들은 멸종의 위기에 이르렀다가 다시 소생하였으며, 그 안에서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를 거치며 인간은 태어났다. 인간은 모이고 모이기를 반복해 문명을 만들었으며, 문명은 계속 발전해 그 크기를 키워나갔다.
땅의 근원을 생각해보고 그 안에서 우리 인류의 근원을 생각해보았을 때, 인류의 문명은 지구의 역사 안에서 수만 분의 일도 안 되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인류는 그 짧은 시간 안에서 수억 년에 걸쳐 쌓아온 대지의 비옥함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법을 쉽게 깨달았다. 땅을 파내어 철을 캐고 금을 캤고, 철심을 박아 석유를 캐내었다. 땅의 비옥함은 곧 문명의 비옥함이 되었고, 결국 문명은 하늘을 찢어내기 시작했다. 문명은 땅을 파고 바다를 매우고 하늘을 찢어 그 비옥함의 크기를 넓혀왔던 것이다. 찢겨진 하늘은 얼음을 녹이고, 녹아버린 바다는 섬들을 삼키고, 섬은 바다가 된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는 진실 중 하나는 이 땅, 지구는 끊임없이 진화해왔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인류가 등장하고 그 인류가 이 땅의 비옥함을 계속 파헤친 이후로 진화의 주체가 지구 스스로가 아닌 인간으로 옮겨졌다. 살기 시작한 지 겨우 만 년도 안 된 존재가 수백 년의 짧은 시간 동안 수억 년의 시간을 거스르며 지구를 기형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딱딱한 지각을 벗겨내고 끝도 없는 구멍을 파며 하늘을 찢어내고 있다. 우리 인류가 수억 년의 시간을 응축하며 파내고, 뜯어내며, 찢어버린다면 결국엔 이 땅은 우주의 쓰레기로 진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 땅은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제 안에 품고 있는 것들을 수천 년 동안 내주었고 앞으로도 수천 년을 내어줄 것이다. 땅은 수억 년을 품고 안아온 제 살과 피를 인간들에게 내어 주고는 점점 쪼그라들어 죽어가고 있다. 우리가 만약 이 땅에서 더 이상 캐낼 것이 없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일까. 달을 캐고 화성을 캐고 태양을 캐낼 것인가. 무분별한 남용으로 땅은 불타고 있고, 하늘엔 뜨거운 숨을 뿜어내기라도 하듯 오존층 구멍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있다. 나의 작품들은 이런 모티프로 제작되었다. 영겁의 시간을 품은 땅이 찰나의 순간에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문명의 욕심으로 인해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이 어떻게 변했으며 어떻게 변해 갈 것인지에 대한 나의 시선들을 디지털 몽타주 기법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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