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은 단순히 눈 앞에 펼쳐진 자연이나 건물의 모습 이상이다. 풍경은 시간을 품고 변화해 온 대지의 표정이며, 그 위에서 살아간 생명과 인간의 흔적들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기억의 장소이다. 저 멀리 바닷가 작은 몽돌에는 그것을 스쳐 간 수억 년의 시간이 새겨져 있고, 여기 가까이 도시의 스카이라인에는 끝없는 욕망으로 점철된 우리 인간의 시간이 새겨져 있다. 풍경은 스스로 말을 걸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의미를 끊임없이 우리에게 전달한다. 변화하는 시간 안에서 우리 인간에게 자신들의 위치를 알려주고, 인간이 어떻게 대지와 관계 맺으며 살아왔는지,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끊임없이 되묻게 해주는 그런 것이다.
사진을 공부하는 내내 풍경은 늘 시선을 사로잡는 대상이 되었고, 그것을 기록하는 건 사진가로서의 중요한 업(業)이었다. 영종도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 이전의 대규모 건설 현장의 모습은 내게 풍경의 창조적 주체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우리 시대의 풍경은 자연 그대로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가는 대상이며, 우리 인간은 신이 디자인한 풍경을 자신에게 맞게 리디자인하는 주체로서 그 지위를 확고히 다졌다는 깨달음이었다. 나는 그 고민을 ‘The Earth(2013)’ 작업을 통해 세상에 선보였었다.
나의 풍경은 인간의 손으로 디자인되고 있는 새로운 풍경의 서사를 기록해 왔다. 인천 영종 신도시 개발 현장, 송도 간척지, 그리고 산허리가 잘려 나간 거대한 채석장들이 바로 그 현장이었다. 산을 깎고 바다를 메워 콘크리트를 채우는 모습, 저 깊은 바닷물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구조물을 위해 물을 퍼내고 철근을 세우는 모습을 통해 풍경을 창조해 내는 인간의 힘을 느꼈다. 멀지 않은 과거에 바다의 한 부분이었던 송도의 풍경은 인간이 바다를 어떻게 리디자인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파괴와 창조의 서사를 담고 있다. 수억 년 동안 바다가 품었던 뻘은 파괴되었고 그 자리엔 인간을 위한 새로운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구조물이 창조된 것이다.
우리 주변엔 늘 ‘공사 중’ 표지판이 있고 굴착기 소리가 들린다. 이제 중학생이 된 첫 아이가 나오기도 전에 하고 있던 공사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며, 아마도 대학생이 될 때까지도 계속될 것이다. 정말 365일 내내 공사 중인 풍경이 바로 우리 시대의 풍경이다. 먼지와 소음이 가득하고 아스팔트가 새로 깔리는 풍경 말이다. 안셀 아담스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더 이상 우리의 현실에선 볼 수 없다. 안타깝게도 그의 풍경은 현실에선 볼 수 없는 ‘픽션’이 되어버린 것 같다. 껄끄러운 소음과 비산먼지가 즐비한 공사 현장이 가득 찬 지금의 시대에서 그런 풍경을 찾는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과정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햇살이 스며드는 녹지와 평화로운 자연의 소리는 이제 돈과 시간을 들여야만 경험할 수 있는 소비재가 된 것이다.
나의 풍경사진들은 이런 관점에서 시작되었다. 1970년대 세계 사진계에 큰 영향을 미쳤던 뉴토포그래픽스는 인간의 개입으로 변모된 풍경을 객관적이고 담담한 시선으로 포착했던 새로운 형식의 사진적 관점이다. 안셀 아담스적인 풍경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던 내게 뉴토포그래픽스의 관점은 너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으며, 특히 로버트 아담스의 사진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인간에 의해 변형된 풍경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담아내면서 보는 이에게 판단을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풍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계속 보여줌으로써 풍경 이면에 숨겨진 깊은 통찰을 끌어내고자 했다. 나는 사진이란 보여주는 것 이상을 암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사진 철학을 곧잘 흉내 내고 있는 것이다. 공사장의 텅 빈 황량함과 아스팔트 자국이 만들어내는 선명한 콘트라스트가 내 이미지의 주요한 조형적 요소가 되었으며, 허구리가 잘려 나간 산 중턱 채석장의 기암절벽 같은 질감과 디테일이 역시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풍경은 신의 영역이었다. 인간의 개입이 허락되지 않는, 자연의 섭리와 시간을 품은 성스러운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신의 영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의 풍경은 인간이 모두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대지를 재단하고, 바다를 메우고, 하늘을 향해 건물을 올리며 자신들의 욕망을 대지에 그대로 구현하고 있다. 이제 모든 풍경에는 인간의 지문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풍경은 더 이상 저절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창조 행위가 빚어낸 결과물이다.
내 사진 작업 전체는 이처럼 인간에 의해 변형되어가는 우리 땅의 풍경을 기록하며, 현재 진행형인 새로운 시대를 다양한 단면들로 담아내고 있다. 나에게 풍경사진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인간과 대지의 관계를 끊임없이 되묻는 사유의 과정이다.
이러한 창조와 파괴의 서사 속에서 나는 ‘크레인’이라는 거대한 존재에 깊이 몰두했다. 이번 작업 ‘조물주의 손가락 - The Crane’은 이 시대의 도시적 풍경을 관통하는 가장 압도적인 오브제이자 인류의 욕망을 대지 위에 새기는 거대한 의지의 도구로서 크레인에 집중한 것이다. 크레인은 단순히 거대한 기계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무한한 욕망과 의지를 하늘 높이 쏘아 올린 상징이며, 대지를 향한 인간의 끊임없는 도전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존재다.
도심 속, 혹은 황량한 건설 현장에 우뚝 솟아 있는 크레인의 모습은 마치 새로운 시대를 건설하는 거인의 팔과 같아 보인다. 특히, 건물이 높아짐에 따라 자신의 높이를 자체적으로 조절하며 끊임없이 상승하는 크레인의 모습은 스스로 성장하고 확장하는 유기체적 특성을 가진 존재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크레인의 자기 확장성은 그것을 ‘조물주의 손가락’으로 보는 나의 사유를 더욱 강화했다.
크레인은 ‘창조’와 ‘파괴’라는 양극단의 행위를 동시에 수행한다. 땅을 파고 바위를 깨뜨리는 파괴적인 힘으로 공간을 비워내지만, 그 빈 공간 위에 새로운 건물을 쌓아 올리고 이전에 없던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창조한다. 이러한 역설적인 역할 속에서 크레인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신적 능력을 대변하는 동시에, 과거의 흔적을 지워내는 지우개의 역할을 수행한다. 크레인의 갈고리 끝에는 인간 문명의 진화와 함께 자연을 길들이려는 의지가 매달려 있다. 크레인이 거대한 몸집을 움직여 하늘을 가르고, 대지 위에 우뚝 섰을 때, 마치 그 옛날 바벨탑이 그랬던 것처럼 기계 이상의 숭고하고 위압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그 금속성 골격은 우리가 세우는 빌딩을 그대로 닮았고, 밤하늘 아래 빛나는 수많은 크레인은 또 하나의 별자리처럼 새로운 도시의 은하수를 만든다.
크레인의 움직임은 땅의 표면을 다시 쓰고 그 깊이를 바꾼다. 크레인이 거대 콘크리트 구조물을 허공에 매달아 올리는 모습은 흡사 신(神)이 혼돈 속에서 세상을 창조하는 움직임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크레인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땅과 건물,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풍경은 인간이 지구의 풍경을 책임지고 창조하는 진정한 ‘조물주’가 되었음을 똑똑히 보여준다. 크레인은 인간이 풍경을 소유하고 재설계하는 존재가 되었음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로 작동하고 있으며, 인간 스스로 ‘조물주’의 지위를 자처하며 지구에 새기고 있는 지문의 역사를 투영하는 대표적인 오브제인 것이다.
사진가로서의 정체성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관점과 메시지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나는 오랜 시간 풍경을 통해 인간의 서사를 다층적으로 이야기하는 방법을 탐구해 왔다. 그 시작으로 첫 작업 'The Earth'에서는 채석장이나 염전처럼 인간에게 자원을 내어준 땅들을 디지털 형식으로 구성하며, 디스토피아적인 모습으로 인간의 흔적들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는 인류의 필요에 의해 기형적으로 변해버린 대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시도였다. 이에 비해 이번 시리즈는 직관적인 시선과 조형적 구성에 비중을 두고 대상 자체에 집중하는 스트레이트한 느낌으로 표현했다. 아파트 창밖이나 도로변 풍광에서처럼 우리가 무심결에 지나치는 일상적 시선 안에 크레인라는 거대한 구조물이 얼마나 많이 등장하는지, 그리고 그것들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풍경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를 보다 직접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조물주의 손가락'은 인간이 주체가 되어 자연의 섭리를 넘어 대지를 재구성하고 그려나가는 풍경의 역사 그 자체를 포착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크레인에 의한 새로운 풍경들을 날마다 새롭게 맞이하고 있다. 나는 풍경 사진이 단순히 경치를 기록하는 것을 넘어, 한 시대를 이야기하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흔적과 미래를 보여주는 가장 강력하고 진실한 도구라고 믿는다. 풍경은 우리가 살아온 방식과 현재의 욕망,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사진적 시도는 계속되는 도시개발의 풍경을 바라보며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고, 어떤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개발과 보존이라는 두 상반된 가치에서 어떻게 균형점을 맞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사진가는 풍경을 통해 시대를 이야기하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흔적과 미래를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나의 이번 작품들이 현대적 풍경 안에 담긴 창조와 파괴의 서사를 보여주고 그 안에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풍경을 상상해보는 시간을 갖게 해주길 바란다.